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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대신 손으로 푸는 감정 – 낙서 루틴 체험기

by @#!$%! 2025. 5. 12.

하루를 보내다 보면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분명히 뭔가 불편했지만 이유를 잘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너무 사소해 보이거나 말을 꺼내는 것조차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말하지 않기’ 혹은 ‘말도 안 되는 감정이라 넘기기’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눌러 담긴 감정은 언젠가 더 크고 무거운 방식으로 표출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감정을 말 대신 ‘손’으로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낙서 루틴’을 통해서입니다.

 

말 대신 손으로 푸는 감정 – 낙서 루틴 체험기
말 대신 손으로 푸는 감정 – 낙서 루틴 체험기

 

 

1. 낙서는 생각보다 강력한 감정정리 도구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공책 귀퉁이에 무심코 그려본 낙서. 그저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했던 낙서가, 사실은 감정을 다루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자기 표현 도구라는 이야기를 듣고 2주간 ‘하루 10분 낙서 루틴’을 실험해보았습니다.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 의미가 없어도 된다. 중요한 건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루틴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 낙서 루틴, 시작하기

처음에는 정말 간단하게 시작했습니다.

  • A5 무지 노트 한 권
  • 검정색 펜 한 자루
  • 하루 10분, 퇴근 후나 자기 전의 조용한 시간
  •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그 어떤 정해진 목표도 없이, “그냥 선을 그어보자”, “원 모양을 반복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중요했던 건, 생각보다 손을 먼저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① : 아무 생각 없이 그리는 선의 위로
처음 몇 일은 어떤 도형을 그려야 할지조차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단순하게 시작했습니다.

  • 똑같은 선을 여러 줄 겹치기
  • 사각형만 반복해서 채우기
  • 큰 원 안에 작은 원을 계속 그리기
  • 칸 없이 자유롭게 방향 없이 움직이기

그렇게 반복된 선과 도형 속에서 놀랍게도 생각이 줄고, 감정이 ‘안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답답한 날에는 굵고 빠른 선, 우울한 날엔 작은 동그라미가 반복되었고, 기분이 좋은 날엔 장식적인 곡선이 많았습니다. 낙서는 분명히 내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언어’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② : 말하지 않아도 해소되는 감정
어느 날은 업무 중 겪은 모호한 불쾌감이 하루 종일 마음을 눌렀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 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펜을 잡고 계속 뾰족한 선과 날카로운 선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형태도, 규칙도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선을 겹쳤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손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그 감정이 나도 모르게 진정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낙서 후에는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③ : 나도 몰랐던 감정의 ‘형태’ 발견
어느 날 낙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리고 있는 이 선은 어떤 감정이지?” 그리고 나서 지난 며칠간의 낙서를 모아보니 내 기분의 흐름이 선과 도형의 형태로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 불안한 날: 작고 촘촘한 반복
  • 지친 날: 길고 흐릿한 선
  • 분주한 날: 각도 많은 선
  • 편안한 날: 곡선과 여백이 많은 그림

말로는 분명히 하지 못했던 감정의 기록이 낙서라는 비언어적 방식으로 나를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3. 낙서 루틴을 지속하기 위한 팁

1) 정답을 내려놓기
그림이 아니어도 됩니다.오히려 ‘의미 없음’을 허용하는 순간, 감정이 자유로워집니다.

2) 시간과 공간 고정하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루틴이 만들어집니다.

3) 도구를 단순하게
색깔을 바꿔가며 그릴 수도 있지만,처음에는 단 한 자루의 펜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4) 말이 아니라 손으로 쓰기
감정이 올라오면 글이 아닌 선, 도형, 점, 방향성으로 표현해보세요.

 

4. 낙서는 나를 위한 안전한 감정 통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언제나 말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말은 논리가 필요하고,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때로는 부담이 됩니다. 그럴 때 낙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 아주 안전한 방식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 되었는지 평가받지 않아도 되고,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속에서‘감정을 다루는 방법’은 반드시 말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5.  손이 먼저 알아채는 감정

감정은 말보다 빠르게 손끝에서 움직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마음, 말로 풀 수 없는 기분, 어디에도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는 날엔 그저 펜을 잡고, 손을 움직여보세요. 그 작은 움직임 속에서 당신의 감정은 이해받고, 정리되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말 대신 선으로 나를 풀어보는 시간, ‘나만의 낙서 루틴’을 시작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