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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의 오해와 진실

by @#!$%! 2025. 5. 29.

조선 시대, 백정이라는 단어는 종종 멸칭처럼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했던 일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사회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었죠. 왜 백정은 차별받았고, 또 왜 우리는 그들을 다시 봐야 할까요?

백정

 

1. 백정이란 누구인가?

백정은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아래에 속한 천민 계층 중 하나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천민이라고 하기엔, 백정은 분명한 직업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로, 주로 도살, 정육, 가죽 가공, 사냥 등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2. 백정의 의미

백정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백성 중에서 직역(직업)이 정해지지 않은 자를 뜻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소, 돼지, 말 등을 잡고 가죽을 벗기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1) 오해 1: 백정은 불결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했다?
오해입니다.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생명을 다루는 일을 ‘더럽다’거나 ‘천하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백정은 생필품과 식량 공급을 책임지는 필수 노동자였습니다. 조선은 농경 사회였기에 가축은 중요한 재산이었고, 그 도축과 가공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가죽은 갑옷, 신발, 말안장, 책 표지 등으로 사용되었고, 백정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군사와 행정도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백정은 국가와 시장의 실물 경제를 지탱한 실무자에 가까웠습니다.

 

2) 오해 2: 백정은 노비와 같은 신분이었다?
사실과 다릅니다. 백정은 노비와 달리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식도 자유인으로 길렀습니다. 또한 일정 지역에 정착해 사는 경우가 많았고, 독립된 가옥과 생활 터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양민보다 낮고, 노비보다 높은 듯 낮은 듯한 애매한 위치였기에 차별은 여전히 심각했습니다.

 

3) 차별 사례

  • 관청 출입 금지
  • 양반과 같은 옷 착용 금지
  • 유교 제례나 향약 참여 배제
  • 이름에 ‘개’, ‘돌’ 등 하대 표현 사용 강요

3. 백정의 실제 역할

백정의 일은 단순한 도축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퍼져 있었습니다.

 

1) 역할 설명

  • 도살업 소, 돼지를 잡아 육류 공급
  • 정육업 고기 손질, 부위별 분류, 판매
  • 가죽 가공 신발, 군복, 말안장, 책표지 제작
  • 사냥꾼 짐승을 잡아 고기·모피 공급
  • 형벌 집행 간혹 형리를 보조해 형벌 보조 업무 수행

→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며 백정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4. 백정의 문화와 조직

차별받던 백정들은 내부적으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인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1) 패: 백정 신분을 증명하는 일종의 면허증

2) 두레 조직: 백정들끼리 돕고 돈을 모으는 공동체

3) 호패제 제외: 일반 백성과 다르게 따로 구분되기도 함

→ 또한 일부 백정은 풍물놀이, 줄타기, 굿 등 민속 예능에도 능해, 마을 의식과 장터의 문화인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5. 백정에 대한 인식 변화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형평운동이라는 사회 운동을 통해 백정 출신 인사들이 신분 차별 철폐를 외쳤습니다.

 

1) 1923년 진주에서 형평사가 결성되어 신분 해방 운동 주도

2) 백정 차별 철폐, 교육 기회 확대, 평등권 요구

3) 한국의 근대 시민권 운동의 시초로 평가받음

 


백정은 오랜 시간 동안 이중적인 존재로 살아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필요했지만, 누구보다 천대받던 사람들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들을 단지 천민으로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조선 사회의 식량 체계와 산업 기반을 유지한 숙련된 직업인이자, 일제강점기에는 신분 차별을 넘어서려 한 저항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백정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