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속 장인의 세계가 궁금하신가요?
1. 장승이란 무엇인가?
장승은 우리나라 전통 마을에서 마을의 입구나 길목에 세워진 나무 또는 돌로 만든 기둥 모양의 조각상입니다. 장승에는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머리 위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모습은 익살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위엄이 있어 마을을 수호하는 신령, 혹은 경계 표시, 풍수적 의미를 동시에 지녔습니다.
2. 장승의 주요 기능
- 수호신 역할: 외부의 재앙, 전염병, 귀신 등으로부터 마을을 보호
- 경계 표시: 행정구역의 경계나 마을 입구 표시
- 의례적 기능: 마을의 제사나 당산제 등에 활용
- 민속 신앙의 상징: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믿음의 대상
이런 장승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 깃든 신앙의 형상화라 할 수 있습니다.
3. 장승장이란?
장승장은 바로 이러한 장승을 만드는 전통 조각 장인을 말합니다. 한자로는 장승을 다루는 장인이란 뜻이 됩니다. 장승장은 나무를 다루는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전통 신앙과 마을 공동체의 문화에 정통한 예술가이자 민속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장승장이 갖추어야 할 조건
1) 조각 실력
나무 또는 돌을 깎는 데 필요한 능숙한 손기술은 기본입니다.
특히 사람 얼굴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웃음과 경외가 공존해야 하죠.
2) 민속 신앙에 대한 이해
장승은 종교적 상징물이기도 하므로, 마을의 제사 형식, 기원 방식, 풍수 이론 등 민속적 지식이 필수입니다.
3) 공동체와의 소통력
장승은 개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기에, 마을 사람들과의 협의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어떤 형상이 어울릴지, 어느 자리에 세워야 할지 등을 함께 결정하죠.
4) 기와 영성에 대한 존중
장승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신체화된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제작 전에는 의례적인 절차나 정결한 태도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5. 장승장의 역사적 배경
장승장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본격적으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장승장을 불러 마을 입구에 수호신을 새로 세우거나 낡은 장승을 교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1) 예전 장승장의 작업 과정
- 장승 소재 고르기: 주로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처럼 오래 가고 기운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나무 사용
- 얼굴 도안 구성: 마을의 성격이나 바람을 반영하여 얼굴의 표정 결정
- 문구 새기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또는 마을 고유의 문구 새김
- 입장제: 장승을 세우는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를 올림
- 장승장은 단순히 조각 기술을 가진 장인이 아닌, 마을의 풍속과 신앙을 구현해내는 예술적 종합 능력자였습니다.
6. 지역마다 다른 장승의 모습
장승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지역에 따라 조각 방식이나 문구, 얼굴 형태 등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 또한 장승장의 손끝에서 결정되었습니다.
- 경상도 지역: 강렬한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비교적 위엄 있는 장승이 많습니다. 외부의 악한 기운을 강하게 몰아낸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 전라도 지역: 눈이 크고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이 많아, 주민들과 보다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 강원도 지역: 돌장승이 많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 많습니다. 이는 사악한 기운을 먹어 치운다는 믿음과 연결됩니다.
- 제주도: 돌로 만든 돌하르방과 장승의 기능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장승 문화와 석상 문화가 융합되어 발전하였습니다.
이렇듯 장승의 형태는 단순히 장승장의 손재주뿐 아니라, 지역의 기후, 전통, 공동체 성격, 자연 환경 등을 반영합니다. 장승장은 이런 다양한 배경을 이해하고,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형상화해야 하는 문화 중개자 역할도 했습니다.
7. 장승장과 공동체 신앙의 관계
장승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믿고 기도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장승을 세우기 전에는, 장승장에게 제작을 의뢰하고 일정 기간 금식과 정갈한 마음가짐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입장제는 단순한 행사나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장승이 세워지는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장승 앞에 제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이때 장승장은 중심인물로, 장승에 정신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처럼 장승장은 종교인도 아니고 단순한 장인도 아니지만, 두 정체성을 모두 갖춘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마을 신앙의 구심점이자 실천자였던 셈입니다.
8. 현대에서의 장승 제작 과정
현대의 장승장들도 여전히 전통을 따르되, 시대에 맞춘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과거에는 손도끼, 끌, 칼 등만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에는 전동 공구도 병행하여 사용합니다. 다만 장승장의 기본 철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승은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정성으로 깎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1) 현대 장승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무 선정 – 장승장은 여전히 느티나무, 참나무 같은 튼튼하고 생명력이 강한 나무를 선호합니다.
- 정화 의식 – 장승을 깎기 전에 나무에게 예를 갖추고, 제작자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 초안 그리기 – 나무에 밑그림을 그리고, 각 부위를 어떻게 깎을지 구상합니다.
- 조각 – 끌과 망치로 얼굴을 새기며, 표정은 마을의 특성이나 의뢰인의 요청을 반영합니다.
- 도색 또는 문구 삽입 – 얼굴 완성 후에는 천하대장군 등 문구를 붓으로 쓰거나 음각으로 새깁니다.
- 설치 및 입장제 동참 – 장승을 세울 자리에 함께 참여하여 마무리 의식을 진행합니다.
9. 장승 문화의 새로운 가치
장승과 장승장은 단순히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 관광 콘텐츠: 각 지역의 장승거리를 따라 장승 조각 공방, 전통 체험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교육 자료: 초·중등학교에서 장승을 소재로 한 민속 수업이 진행되며, 장승장이 직접 강사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 공공미술: 일부 지자체에서는 장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조형 예술 작품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지역 정체성을 담은 상징물로 활용 중입니다.
- 환경 조화: 장승은 자연 소재를 활용하고 자연 속에 세워지는 특성 덕분에, 친환경적인 미술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장승장은 이제 단지 전통 장인을 넘어, 지역 문화 기획자, 교육가, 예술가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10. 현대의 장승장과 전통의 계승
오늘날에도 장승장의 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장승제작장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장승장으로는 원주 장승장 박찬수, 공주 장승장 김종흥 씨 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 방식 그대로 장승을 제작하면서도, 현대 도시 환경에 어울리는 새로운 장승 형식도 개발하며 문화재 보존과 민속예술 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 장승 체험 프로그램, 마을 공동체 복원 프로젝트, 학교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장승 문화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11. 장승과 장인의 의미
장승은 단순한 나무 기둥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 염원, 웃음, 공동체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장승장은 그 감정을 나무라는 생명체 속에 조각해 넣는 사람입니다. 장승을 새긴다는 것은 단지 조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깎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승장은 목수가 아니라, 신앙과 공동체의 조율자이자 상징을 창조하는 예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장승은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이고, 장승장은 그 역사를 깎아낸 사람입니다.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장승 하나하나는 그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염원, 그리고 기원이 응축된 상징물입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공동체보다는 개인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장승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장승장은 그 공동체적 정체성을 되살리는 문화 예술의 연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