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음식과 음료, 특히 술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던 공무원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능인에 그치지 않고, 궁중 제례와 국가 행사, 왕실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필요한 술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 직책은 바로 주리입니다. 주리는 술을 다루는 전문 관원으로서 조선시대 음식 문화와 관청 체계, 의례 전통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본 글에서는 주리의 개념과 역할, 조직 구조, 역사적 기록, 그리고 사회적 위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주리란 무엇인가?
주리는 한자로 술을 맡은 하급 관리 또는 기술직 공무원을 뜻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관청, 군대, 제례 등에서 사용되는 술을 직접 제조하고 공급하며, 그 품질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업무를 전담하던 이들이 바로 주리입니다. 주리는 술을 빚는 법뿐만 아니라, 어떤 술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례에 사용하는 술은 별도의 양조법과 정결한 환경이 요구되었으며, 연회나 하사품으로 제공되는 술은 맛과 향, 보존력 등이 중요했습니다.
2. 주리의 소속과 역할
주리는 보통 사옹원이나 봉상시 등 음식과 의례를 관장하는 관청에 소속되었습니다. 특히 사옹원은 궁중의 식사를 담당하던 기관으로, 그 산하에 술을 만드는 양온청이라는 부서가 존재했습니다. 양온청에서는 술을 담그는 기술자들이 주리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다음과 같은 주요 업무를 맡았습니다.
- 술 제조: 각종 제사, 연회, 왕실 일상용 술을 양조함.
- 재료 관리: 쌀, 누룩, 물 등 술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선별과 보관.
- 위생 및 온도 관리: 술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철저히 관리.
- 품질 검사: 양조 후 술의 색, 향, 맛을 확인해 불량 여부 판단.
- 배급 및 기록: 만든 술을 어떤 행사에 얼마나 제공했는지 문서화.
3. 제례와 술의 관계
조선은 유교 국가로서 제사를 매우 중시했습니다. 종묘 제례나 사직단 제사, 명절 제례, 왕실의 조상 숭배 등 다양한 국가적 행사에 술이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리는 이러한 제사에 사용되는 술을 제주라고 하여, 특별히 깨끗한 환경에서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술의 빚는 시기, 보관 온도, 제공 시점까지 철저히 규정되었고, 이를 담당하는 주리는 단순 기능인을 넘어 의례의 핵심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4. 술의 종류와 주리의 기술력
주리가 다루던 술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 청주: 맑고 투명한 고급 술로 제례와 연회에 사용됨.
- 탁주: 백성이나 병사들에게 하사되던 술, 보존성 강조.
- 소주: 고온에서 증류해 만든 강한 술로, 일부 의약용이나 의전용으로 사용됨.
주리는 이러한 술을 구분하여 빚는 법을 익히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종류를 판단하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누룩 제조, 발효 조절, 온도 관리 등은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5. 주리의 일상과 직업적 위상
주리는 일반적으로 중인 혹은 기술직 하급 관원 출신으로, 과거 시험을 통한 출세보다는 기능적 숙련을 바탕으로 성장한 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거나 왕실의 총애를 받으면, 그 위상이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연회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거나, 왕이 칭찬한 술을 만든 주리는 상을 받거나 다른 기관으로 전출되며 승진의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문무백관이 출입하는 연회에서 술이 실수 없이 제공되는 것은 궁중의 위신과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6. 역사 속 주리의 사례
조선왕조실록에는 종종 양온청에서 술이 부족하거나 상한 사례가 보고되며, 이 경우 주리가 문책당하거나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정조 시기에는 술맛이 좋다고 왕이 주리를 불러 상을 내린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지방의 관청에서도 주리를 임시로 채용하거나 파견받는 경우가 있었으며, 지방 수령의 제사나 잔치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이처럼 주리는 전국적으로 활동하던, 실용적이고도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주리는 조선시대 궁중 및 관청 내에서 술을 담당한 전문 인력으로, 단순한 기술직을 넘어 제례와 왕실 문화에 깊이 관여한 인물입니다. 그들은 조선의 유교적 세계관, 음식 문화, 행정 체계 속에서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