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몸은 소파에 앉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긴장 상태였습니다. 회의 시간에 받았던 눈빛, 메신저 속 이모티콘 하나, 예정에 없던 일로 밀려든 피로감까지… 감정은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존재라는 걸 퇴근 후에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소리와 자극을 통해 또 한 번 자극받고, 증폭되곤 합니다. TV 소리, 휴대폰 알림, 영상, 음악, 유튜브 자동재생… 이 모든 소리는 생각보다 더 깊이 우리의 감정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의 끝, 딱 30분만이라도 ‘아무 소리도 없는 시간’을 가져보는 실험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1. 왜 ‘소리 없는 시간’이 감정을 회복하는가?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자극이 아닙니다. 청각은 감정과 뇌의 리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감각입니다. 특히 우리는 하루 종일 알람음, 말소리, 회의 음성, 콘텐츠 소음 등 끊임없는 청각 자극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감정이 정리될 틈조차 없이 밀려드는 피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소리 없는 30분은 이 감정 자극의 흐름을 끊고, 내면의 감각과 감정을 정돈하는 시간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2. 실험 시작 – 30분간 ‘완전 무음 루틴’을 실천
실험은 단순했습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난 뒤 30분간 TV, 음악, 휴대폰, 영상 등 모든 소리를 차단한 채 조용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1) 실천 방식
-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설정
- 조명은 최대한 따뜻하게, 조도 낮추기
- 창문은 닫고, 인공 소음 차단
- 조용한 활동만 허용: 종이책 읽기, 일기 쓰기, 차 마시기, 가만히 앉기
이렇게 만든 ‘완전 정적 환경’ 속의 30분은 의외로 강력한 감정 정화 효과를 주었습니다.
처음엔 적막이 불편했습니다. 익숙한 음악이 없고, 메신저 알림도 없고, 창밖 소리조차 차단된 정적 속에서 오히려 불안과 어색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조차도 ‘그동안 얼마나 소음에 의존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하루 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조용히 떠오르고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10분쯤 지나자,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회의 시간의 내 표정, 점심시간의 짧은 대화,
길거리에서 마주친 풍경까지. 하지만 이 장면들은 더 이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선 감정이 강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가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지 않고도, 생각을 정리하지 않아도, 감정이 가라앉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분을 지나면서 오히려 청각이 민감하게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귀가 조용함에 적응하면서 냉장고의 미세한 소리, 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 옆방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발걸음까지 평소엔 흘려버리던 작은 감각들이 살아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억눌리거나 쌓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듯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마음 안에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에 평온이 자리를 잡는 기분이었습니다.
3. 소리 없는 30분, 이렇게 실천해보기
하루에 단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무음의 공간’과 ‘무자극의 태도’입니다.
1) 실천 루틴
①공간 만들기
– 불필요한 전자기기 OFF
– 음악, 영상, TV 꺼두기
– 간접조명 활용해 시각 자극도 최소화
②행동 고르기
– 아무것도 하지 않기
– 또는 종이책 읽기, 일기 쓰기, 차 마시기 등
– 말 없이 조용히 진행 가능한 활동
③자기에게 선언하기
– “지금은 감정을 쉬게 하는 시간입니다.”
– 뇌에 ‘이 시간은 쉬어도 된다’는 신호 주기
바쁜 하루 속 감정을 비우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정보를 찾고, 조언을 구하고, 콘텐츠를 보며 ‘해결하려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때로 어떤 정보도, 말도, 자극도 없이 조용히 비워질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합니다. 퇴근 후의 30분,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이, 소리 없는 공간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이 루틴은 삶을 더 가볍게, 감정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소리 없는 여백 속에서 당신의 감정도 천천히 정리되기를 바랍니다.